한국 기업에서 누가 감히 CEO의 독단 지적할 수 있나

한국 기업에서 누가 감히  CEO의 독단 지적할 수 있나
그럴수록 비판에 귀 기울여야…

출처 : 조선일보 경영 칼럼에서 발취함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10/2010121001220.html

당 태종이 신하 위징(魏徵)에게 우매한 군주와 현명한 군주가 되는 차이를 물었다. 위징은 “고루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 의견만 치우쳐 들으면 우매해진다(兼聽則明, 偏信則暗)”고 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당 태종이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명군으로서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위징과 같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간언하는 충직한 신하를 가졌으며, 그 까칠하고 속 뒤집는 직언을 경청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통을 제대로 실천하는 리더는 흔하지 않다. 블로그나 트위터를 한다고 해서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소통의 본질은 정보와 논의의 개방성, 특히 비판적이고 불편한 소리를 듣고 존중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권력의 사다리를 오를 때는 주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정상에 서고 나면 소통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인다. 불만을 표출하는 경로로, 권위를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을 방해하고 실행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하기 쉽다. 즉 권력을 가지면 소통을 외면하는 ‘소통의 역설’이 작용한다.

▲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리더가 소통의 역설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상의 자리를 스스로 위태롭게 한다. 귀에 거슬리고 불편한 비판의 소리를 기피하고, 듣기 좋은 소리에만 치우칠 경우 전체를 보는 눈을 잃고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은 당연한 결과다. 힘이 강할수록 소통의 유인은 작고, 잘못된 결정을 선택할 위험은 커진다. 그 결과 정상에서 추락할 위험 또한 높아진다.

공자(孔子)는 주역 64괘 중 첫 번째 괘로서 가장 강한 힘을 시사하는 ‘중천건’의 여섯 번째 양(陽)에 대하여 ‘항용유회(亢龍有悔)’, 즉 오를 데까지 오르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긴다고 경고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이 스스로 삼가고 경계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상에 오르면 소통의 역설에 빠지기 쉬울 뿐만 아니라 삼가고 경계하는 초심(初心)을 유지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소통 문제는 우리 정치의 화두이기도 하지만, 정작 소통의 역설에 빠질 위험은 정치 지도자들보다도 기업 CEO들에게 훨씬 크다. 정치 지도자는 힘이 표에서 나오기 때문에 소통의 유인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이나 반대당 등의 견제 장치가 작동한다.

그러나 기업 CEO의 경우 기업 내부에서는 이사회와 노조를 제외하고는 견제 장치가 없다. 더구나 대부분의 이사회가 ‘친목회’와 다름이 없는 것이 현실이며, 인사나 운영상의 결정은 대부분 CEO가 독단으로 행사한다. 기업 내부에서 누가 감히 CEO의 실책을 거론할 수 있는가?

특히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오너 CEO’나 다른 이유로 제왕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CEO일수록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소통의 역설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 결과 스스로 위험 관리의 안전장치 없이 추락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이러한 위험이 CEO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기업문화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CEO들은 ‘전두엽 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점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전두엽은 뇌의 앞쪽 부분으로 판단과 균형 감각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전두엽이 손상을 입으면 감정이나 의사 결정의 균형 감각이 크게 약화되는데 이것이 바로 전두엽 증후군이다.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뉴욕 월가 투자은행 CEO들의 자신감 과잉이 거론된다. 그들은 ‘전두엽 증후군’ 환자들이었다. 균형 감각을 상실한 채 말 잘 듣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측근 인사들에게 둘러싸여 수십 년 쌓은 성공의 신화를 하루아침에 망치는 결정을 내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CEO 스스로가 소통의 역설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추락할 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마저 심각하게 훼손시킬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금융계와 재계의 몇몇 사건들은 소통의 역설이야말로 우리 기업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지배구조의 당면 과제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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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한국 기업에서 누가 감히 CEO의 독단 지적할 수 있나

  1. owlpad says:

    요즘 같이 불신의 사회에서 소통이 안된다면 뭘 믿고 서로 신뢰를 하고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투자를 하며 온몸을 불사르는 열정이 생기겠는가? 북한의 5호 담당제 마냥 독재적으로 관리하는 CEO 를 보지만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상세한 부분에 있어서 터치하기 힘든 부분이 있으며 이 부분을 아는 현장 사람들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언제든 카바하는 지혜가 생긴다.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배려하는 스킨쉽으로 무언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CEO에게는 그보다 더한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생산력으로 뭔가를 보답하기위해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 뭘로 열정을 불러 일으키겠는가? 종업원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관심으로 포기하는 CEO는 그만큼의 무관심으로 메아리처서 나중에는 큰소리, 서로 아귀다툼으로 밖에 해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피가 흐르고 있고 그 피는 온기가 있으며 그 온기는 무관심이 아닌 파워풀한 열정으로 다시 불사르라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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